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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행정부가 다 기업을 적으로 봐”

<조선일보>석남준 기자 입력 2020.09.25


재계, 집단소송제 확대 예고에 한숨


정부가 ‘기업 규제 3법’이라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23일 ‘기업 규제의 결정판’이라 부르는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 도입하는 법안을 입법 예고하겠다고 하자, 재계는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기업이 기댈 데가 없다” “행정·입법·사법부가 모두 기업을 사실상 적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안 그래도 힘겨운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6번 입장문 내도 정부·여당 꼼짝 안 해


최근 대기업 A사는 국회 보좌관, 정부 부처 담당자 등을 만나 기업 입장을 설명하는 대관(對官) 부서 인원을 30% 줄였다. A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회·정부 부처와 불통이 극에 달해 대관 업무가 무의미해졌다”며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있는데 아무리 만나서 떠들어봤자 바뀌는 게 없다"고 했다.


재계에선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계속해서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상의가 지난 21일 국회에 제출한 ‘주요 입법 현안에 대한 의견’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 후 석 달(6~8월) 동안 발의된 법안 중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은 284건에 달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대 국회와 비교하면 부담 법안이 40% 늘었다”며 “숫자도 문제지만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을 줄 법안이 많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대한상의가 지적한 법안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과 내부 거래 규제 대상을 획일적으로 확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포함됐다. 대한상의는 이런 법안은 기업 기밀 유출, 투기 펀드의 경영권 침해 등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경제 단체는 공정거래법, 상법,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고용보험 도입 등 기업 경영에 직결되는 현안에 대해 지난해부터 26차례에 걸쳐 국회와 정부에 의견서와 입장문을 제출했다. 또 다른 경제 단체도 건의문과 성명서를 11차례 발표했다. 한 경제 단체 임원은 “경제계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 부처를 방문해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쟤네(기업)는 만날 저런 소리만 한다’는 반응에 멋쩍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권분립은 교과서에만 있는 말... 기업이 모두의 적"


재계는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 죽이기 퍼레이드’에 동참하고 있다고 본다. 기업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를 계속하고 있는 공정위는 지난 7일 “기업 집단이 자료·신고 제출 의무를 계획적으로 위반한 경우 그 중대성과 관계 없이 무조건 고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7월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의 기술 자료를 유용했다며 시정 명령과 함께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현대중공업은 ‘중소기업 기술 빼먹고 부품 값도 주지 않는 악덕 기업’으로 몰렸다. 현대중공업은 서슬 퍼런 공정위에 맞서기 어려워 반박 자료조차 내지 못했고, 최근 조용히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자기들이 만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지만, 끝내 기소를 강행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1년 8개월 동안 임직원을 430여 차례 불러 조사하고 50차례 이상 압수 수색을 벌였다.


기업들은 공정한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 사법부마저 결론에 짜 맞춘 법리 해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절망하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하청업체)이 아니라 그 기업의 원청업체를 점거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근로자들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 입장에서 삼권분립은 교과서에나 있는 말”이라며 “왜 기업이 모두의 적이 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석남준 기자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0/09/25/WUHUVXGQAVBM7KFZPLRGDSSY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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